블로그 혹은 낙엽에 관하여

모노로그 | 2008/11/19 00:47 | 랩소디.

 블로그라는 것이 몇년 동안을 잘 꾸며왔더라도 한 순간에 '폐쇄 버튼'을 누름으로써 모든 것을 날려버릴 수 있다. 한 묶음의 비밀 일기장을 아무런 미련없이 활활 타오르는 불에 집어던질 수 있는 것처럼. 사람에겐 그만큼 모질고 쿨한 면이 있다.


 오늘 새벽 출근 길에 조금은 특별한 경험을 했더랬다. 세상의 모든 낙엽들이 밤사이 우리 동네로 쏟아진 것처럼 도로, 인도 할 것 없이 온통 노란 카펫이 깔려있었다. 낙엽이 깊은 곳은 정말 발목까지 빠지는 깊이였다. 고개를 올려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니 앙상하고 마른 가지들만 눈에 들어왔다. 가지들 때문에 더욱 춥게 느껴졌다. 

 나무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나는 문득 하룻밤 사이에 아무런 미련 없이 모든 이파리들을 떨궈버린 나무들의 기분이 궁금해졌다. 따뜻한 봄에 살을 간지럼태우며  돋아나던 연록색의 기억과 한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푸르게 푸르게 짙어져 갔던 파란 이파리들을 그리워 하고 있을까. 아니면 아주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있을까. 만약 홀가분한 기분이라면 나무는 무척 쿨한 존재다.  

 그 궁금증은 환경미화원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는지 쓸어도 쓸어도  없는 질문들을 계속해서 하고 있었다.  

 

 


태그 : 낙엽, 블로그

vs 강아지

모노로그 | 2008/11/17 00:13 | 랩소디.

 다들 기억하겠지만 어젯밤에는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렸었다. 나는 우산을 챙겨들고 잠시 산책을 나서는 중이었다.

 내가 골목길을 빠져나와 큰길로 접어들려 할 때 내 앞으로 강아지  마리가 쫄랑쫄랑 걸어오는게 보였다. 강아지는 갑자기 전봇대 앞에서 멈추더니 한쪽 다리를 들고 거기에 영역표시를 했다. 어려서부터 웃어른을 공경하고 공중도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지는 않았지만 그 장면을 목격한 나는 강아지에게 한 소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얌마, 어디 신성한 길에서 노상방뇨를 하냐! 그것도 형님 앞에서."

 

 나는 강아지가 나의 굵고 힘있는 목소리의 포스에 눌려 꼬리를 내리고 그대로 줄행랑 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짜식, 무섭긴 했을 거다' 그때 내가 해줄 멘트까지 준비한 상태였다. 실제로 강아지는 내가 조금씩 다가오자 몸을 꽤 숙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왈왈 왈왈왈!"


 

 강아지는 나를 향해 마구 짖어대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짖는 톤 속에는 분명 어떤 감정이 녹아있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욕이었다. 나는 은근히 기분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대인배인 나는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우산을 몇 번 허공에 휙휙 내저었다. 대충 겁을 줘서 내석을 보내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강아지는 더욱 더 공격적으로 짖어대기 시작했다. 이젠 내 다리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그땐 정말 화가 났었다. 가서 멱살이라도 부여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강아지에게 돌멩이를 집어던지는 시늉을 했다. 보통의 개라면 겁을 먹고 달아났겠지만 이놈은 좀처럼 도망갈 줄을 몰랐다.  


 그상태로 한 5분은 흐른 것 같다. 강아지는 맹렬히 짖어내고 나는 "안 도망가? 이걸 확!" 이러면서 말이다.


 결과는 나의 처참한 패배였다. 뒤에서 사람이 걸어오는 바람에 나는 강아지를 피해 옆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강아지는 내가 자기에게 겁을 먹고 도망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열이 올랐다. 가서 패줄까 생각도 했지만 걍 참기로 했다.

 세상에, 강아지랑 싸워서 지다니! 


태그 : 강아지, 싸움

불안까지 끌 수는 없었다

모노로그 | 2008/11/14 13:15 | 랩소디.

 며칠 전 아침 회사에서 일을 하다 문득 집에 전자 모기향-아직까지 모기가 있다;;-을 켜두고 왔는지 아니면 끄고 왔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전자 모기향은 몇 시간까지 켜놔도 안전할까요?" 


 옆사람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최장 12시간까지 켜놓은 적이 있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내 상황은 만약 모기향이 켜져 있다면 12시간도 훨씬 넘게 켜져 있어야 상황이었다.


 내가 끄고 왔던가. 아냐, 끈 기억은 없는데.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껐을 지도 몰라. 그런가? 걍 꺼져있다고 생각할까? 혹시 켜져있으면? 불까지는 아니더라도 탄 냄새는 나겠지. 갔다 올까. 너무 귀찬잖아. 하지만 점심시간에 잠깐 갔다와도 되잖아. 좀 불편하긴 하겠지만 불안한 것 보단 낫잖아.


 그렇게 해서 나는 점심을 먹고 집으로 향하게 됐다. 문을 열고 모기향의 전원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전원의 빨간불은 켜져 있었다. 나는 아예 코드까지 뽑아버렸다. 그제서야 나는 내 불안의 전원이 스르르 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저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에는 <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라는 책이 있다. 실비 제르맹이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책이다. 처음엔 그냥 책 제목이 나쁘지 않아서 골랐는데 지금은 문장 하나 하나를 음미하며 읽고 있다. 문장을 한 입, 한 입 씹어먹는다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렇다. 


  그런데 어제 그 책 90 페이지를 읽다가 이상한 낙서 하나를 발견했다. 우선 페이지 우측 하단에 적힌 낙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사실 그는 손만 가진 손과의 연애.

그 손은 때때로 그에게서 뚝 떨어져 나온다. 그 손은 그의 나이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오로지 그의 삶을, 활력을, 열정만을 증명한다.


 처음에 나는 책 본문에 나오는 내용을 누군가 그대로 옮겨적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문장은 책 어디에도 없었다. 누군가 창작해 낸 글인 것이다. 글의 내용도 그렇고 글씨체를 봐서도 어떤 여자의 솜씨가 느껴졌다.

 그 여자는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 혹시 이 낙서를 직접 쓴 사람이거나 그 사람을 아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도 우체국 사서함 78-5로 엽서를 보내셔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 사실 이런 낙서를 만나는 건 즐거운 일.


iPhone Ocarina

공상과학 | 2008/11/13 21:29 | 랩소디.

휴대폰=악기인 시대에 살고 있구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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